일탈을 꿈꾸는 자
메뚜기는 산이나 들, 집 앞 텃밭 근처에서도 흔히 마주 칠 수 있는 친근한 곤충이다.
어렸을 때 메뚜기를 잡아 풀에 줄줄이 꿰어 엄마에게 잡아다주면 달군 프라이팬에 메뚜기를 구워 아버지 술안주로 드리곤 하였다. 산, 들 어디에서든 메뚜기나 사마귀를 가지고 놀았던 기억이 새롭다.
벼가 누렇게 익은 논에 가보면 갈색빛으로 통통하게 여문 메뚜기들을 수 십마리에서 수 백마리는 볼 수 있다.
어떤 메뚜기들은 가족 단위로 몰려 다닌다. 어른메뚜기 등 뒤에 어린메뚜기 한 두 마리씩이 업혀서 다니기도 한다.
벼를 벨 무렵이면 메뚜기들이 벼이삭을 갉아 먹어 농민들에게는 골치거리가 되기도 한다.
요즘 사람들에게도 메뚜기는 알맞은 술 안주로 통한다.
일본 작가 다시마 세이조의 <뛰어라 메뚜기>는 우리에게 한바탕 웃음을 선사한다.
조그만 수풀 속에 숨어 사는 주인공 메뚜기는 천지사방이 온통 천적들뿐이다.
새는 물론 두꺼비, 도마뱀, 커다란 풀뱀, 사마귀, 거미와 거미줄까지 세상이 온통 잡아먹으려는 자들뿐이니 매일매일 깜짝 놀라면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이런 와중에 메뚜기는 자기가 사는 무수한 생존경쟁의 세상이 싫어져 단단히 마음을 먹고 일탈을 꿈꾼다.
어느날 메뚜기는 커다란 바위 꼭대기로 나와 대담하게 햇볕을 쬐기 시작하고 일대 사건은 여기서부터 벌어진다.
커다란 풀뱀과 사마귀가 메뚜기를 발견하고 바위꼭대기 메뚜기한테 달려든다.
"푸하하하하······"
이 부분에서는 이렇게 웃어주어야 한다. 아니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순간 메뚜기는 있는 힘을 다해 뛰고 그 바람에 바위에 부딪친 뱀은 온 몸이 우그러지고 사마귀는 산산조각이 난다.
거미와 거미줄은 뒤죽박죽 엉망이 되어 버리고 날아가는 새는 있는 힘을 다해 뛰어 오른 메뚜기에 맞은 걸 총알에 맞은 줄 알고 깜짝 놀란다.
매일 주위의 천적들에게 수 없이 당하고 쫓기기만 하던 메뚜기가 원수들에게 한바탕 복수를 한 것이다.
날개가 있음을 깨닫다
메뚜기는 구름을 뚫고 끝없이 올라가다가 더 이상 올라갈 수 없음을 알고 아래로 떨어지면서 살길이 없다고 생각한 순간, 자신에게도 날개가 있음을 깨닫고 날개를 편다.
평소에 날갯짓을 해 본적이 없는터라 나비들은 엉터리 날갯짓이라고 비웃어 대지만 메뚜기는 자기 힘으로 날 수 있음에 정말 기쁘고 즐겁다.
자, 이제 날게 된 메뚜기는 어떻게 될까. 메뚜기는 정말 일을 내고야 만다. 우리는 감히 꿈도 꾸지 못하는 짓을 저지른다.
우리는 매일매일 반복되는 똑같은 하루하루가 싫어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을 꿈꾸지만 꿈만 꿀뿐 탈출할 용기는 없다.
아니 용기는 있을지라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인공 메뚜기는 해냈다. '자기 날개로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 바람을 타고'
'황무지를 지나서 멀리멀리' 날아간다. 또 다른곳에서 메뚜기는 과연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아마도 이전보다는 좀 더 넉넉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게되지 않을까?
<뛰어라 메뚜기>는 다시마 세이조가 직접 글을 쓰고 그렸다.
굵은 붓을 사용하여 진하지 않은 색으로 덧칠하지 않고 옛 선비들이 난을 칠 때의 느낌으로 그렸다.
그래서인지 필치가 굵고 힘차며 색과 분위기가 시원스럽다.
굵은 붓을 사용해 뻗치듯이 그렸지만 섬세함이 살아 있다.
생물들의 표정이라든가 수풀속의 물풀의 모습도 사실적으로 묘사하였다.
메뚜기를 먹는 두꺼비의 표정이 매우 흡족해 보인다. 풀잎 밑에 숨은 메뚜기를 발견한 사마귀도 기대에 잔뜩 부풀어 있다.
메뚜기를 잡아먹으려는 커다란 뱀의 사나운 표정과 날카로운 이빨 모양도 섬뜩하다.
메뚜기에게 맞은 걸 총에 맞은 줄 알고 있는 새의 황당한 표정과 모양새와 깃털이 흩어지는 모습은 눈이 어지러울 정도다.
막막해질 때 날개를 떠올리다
메뚜기가 구름위까지 올라갔다가 더 이상 오르지 못하고 아래로 떨어지는 장면은 단순한 붓칠이지만 빠른 속도감이 느껴진다. 이 그림책을 읽으면서 속도 후련해졌지만 힘이 막 솟아나는 느낌을 받았다.
어른이든 아이든 짜증스럽고 속상한 일때문에 훌훌 털어버리고 마냥 떠나고 싶은 자 있다면 <뛰어라 메뚜기>의 주인공 메뚜기처럼 훨훨 날아보라. 지루하고 복잡한 삶으로부터 일탈을 하고 싶을 때 미친 척 떠날 수 있는 자에게 마음껏 격려를 보낸다. 살면서 더 이상 나아갈 힘이 없고 두꺼운 안개 낀 길처럼 막막해질 때 날개를 생각해 낸 메뚜기처럼 그대에게 힘과 용기가 되어줄 날개가 그대의 깊은 영혼 속 어딘가에 반드시 있다고 믿는다.
<출처>
-그림책 : <뛰어라 메뚜기>
-출판사 : 보림
-글, 그림 : 다시마 세이조
-옮긴이 : 정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