뗏목을 타고 떠내려온 한 남자
어느 날 어떤 섬에 한 남자가 뗏목을 타고 파도에 휩쓸려 떠내려 온다.
작가는 남자가 그들과 같지 않다는 걸 강조하려는 듯 책 하단에 짧게 ‘남자는 그들과 같지 않았습니다.’라는 구절을 다른 구절과 한참이나 떨어뜨려 놓는다.
섬사람들은 낯선 이 남자가 어쨌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낯선 남자의 의견은 물어보지도 않고 그도 이 섬이 맘에 들지 않을 거라고 단정해 버린다.
그러고는 아무것도 걸치지 못하고 낯선 사람과 풍경에 의아해하는 남자를 캄캄한 파도 속에 밀어 넣으려고 한다.
하지만 양심 있는 어부가 그가 죽을거라고 하면서 그를 섬에 두자고 한다.
사람들은 남자를 염소우리에 가둬두고 그를 잊고 일상에 빠져 살아간다.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남자가 잊혀져 갈 무렵 배고픔을 참지 못한 남자가 염소우리를 빠져 나온다. 남자는 단지 자신이 배가 고프다는 걸 알리고자 먹을 것을 좀 얻고자 한 것뿐인데 섬사람들 사이에서는 일대 소란이 일어난다.
사람들의 소동으로 인해 오히려 남자가 더 놀란듯 보인다.
남자의 놀란 표정이 화가 뭉크가 그린<절규>에 나오는 인물을 연상시킨다.
뭉크의 그림에는 주인공이 손을 양쪽 귀에 대고 놀라는 모습이지만 <섬>에 나오는 주인공은 양손을 가슴께에서 엇갈리게 포개고 오른손으로 벌린 잎을 가리고 있다.
한때는 낯선 이 남자를 식당종업원, 짐 마차꾼, 성가대원으로 쓰려고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남자에게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고 낯선 이 남자가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이라고 단정해 버린다. 그러고는 돼지나 먹을 만한 음식을 남자에게 던져주고는 남자가 말썽을 일으키지 않도록 염소우리 문을 튼튼하게 고친다.
그래도 사람들은 불안해하고 그 불안은 사람들에게 갖가지 망상을 만들어 낸다.
그 망상은 섬사람들의 일상을 지배하며 낯선 남자는 어느새 마을 사람들을 위협하고 겁나게 하는 공포의 존재가 되어버린다. 낯선 남자에 대한 소심한 경계가 갖가지 불안과 소문을 동반한 망상을 만들어내고 급기야는 참을 수 없는 공포의 단계까지 가게 된 섬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남자를 다시 파도 속에 떠밀어 넣는 일 뿐이다.
또한 유일하게 남자의 편을 들어준 어부의 배마저 불태워버리고 그것도 모자라 섬 둘레에 높은 장벽을 쌓는다. 섬 바깥에 있는 누구도 섬 안의 소식을 들을 수 없도록 밤낮으로 바다를 감시하는 탑도 세운다.
오해와 편견은 우리를 지배한다
어느 날 우리 마을에 낯선 이가 내가 사는 마을에 흘러 들어온다면 여러분은 그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섬>은 낯선 이에 대한 소심한 경계가 얼마나 사람을 무차별하고 잔인하게 파괴시킬 수 있는지를 치밀한 구성과 무채색의 둔중한 그림을 통해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다. 운명이라는 파도에 휩쓸려 섬에 들어온 낯선 이는 결혼을 통하여 우리나라에 와서 살게 된 결혼 이민자들과 다문화가정 자녀들, 가족의 꿈 또는 자신의 꿈을 위해 돈을 벌려고 온 동남아시아 노동자들과 소수의 동성애자들, 북한에서 탈북한 새터민 가족들, 또한 공동체 속에서 소외되고 소통되지 못하는 부류의 모든사람들의 다른 이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전체와 다른 소수의 이름을 가진 사람들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편견은 어느 때는 도가 지나치다. 우리는 늘 잘 아는 사람들과 살아갈 수 없다.
사회생활은 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부딪치고 싸우는 과정을 통해 이뤄진다.
친근한 가족들 사이에서도 갈등은 끊임없이 일어난다.
그러니 새롭고 낯선 이들과의 만남은 얼마나 두렵겠는가.
그러기에 우리는 주변 사람들을 조금씩 탐색하고 경계하기도 하고 눈치도 살피면서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아간다.
나와 생각이 같은 사람들끼리 모이면 편안하고 익숙한 것처럼 사람들은 공동체 속에서 편안하고 익숙한 것들을 쫓는다.
하지만 편안하고 익숙한 것들이 어느 누구를 상처주고 눈물짓게 할 수도 있다.
자신도 모르는 편안한 일상이 모르는 그 누군가를 고립시키고 외롭게 할 수 도 있다.
어떤 낯선 이가 공동체 안에 들어오게 되면 그와 익숙해지기 전까지 사람들은 자신의 관점으로 상상하고 추측하고 그 상상에 자신의 주관적이고 부정적인 생각을 보태어 그에 대해 판단한다.
그런 판단을 근거로 해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결정한다.
누구와 친근해지고 익숙해지기 전까지 우리는 많은 오해와 편견에 지배당하고 있는 것이다.
짓눌릴지라도 외치고 외쳐야 한다
작가는<섬>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고 했을까.
낯선 이에 대한 섬사람들의 이기심으로 인해 이웃으로부터 보살핌받고 친절을 받아야 할 헐벗고 굶주린 우리의 이웃이 상처받고 고통당하는 현실을 고발하고 싶었을까.
조용한 섬마을, 이방인에 대한 조그만 편견이 공포를 만들어내고 공포가 섬사람들을 광포하게 만들어 이방인을 죽음에 이르게 하기까지 어느 누구도 자신들이 저지르는 죄를 깨닫지 못한다. 우리는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자신들이 편안한 쪽에 기대어 파도가 쓸려가는 쪽으로 가버리는지도 모른다.
섬사람들이 낯선 이에 대해 무관심했더라면 남자는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낯선 이에 대한 지독한 관심이 독을 품어내는 악성댓글처럼 그를 죽음으로 내 몬 것인지도 모른다. 소위 공인이며 만인의 연인이라고 하는 연예인에 대한 무차별적인 악성댓글이 한 인생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기도 하지 않는가.
사람들은 세상을 우선 자기만의 눈으로 바라본다.
그게 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하고 깊이 있는 눈으로 상대를 바라보며 관계를 형성해 갈 때 개성 있고 신나는 인간관계를 만들어 갈 것이다.
살아가는 것은 자신만의 장벽을 쌓아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섬사람들은 낯선 이방인을 자기 곁에 두는 것이 두려워 그를 죽음으로 내몰고 자신들의 공동체에 높은 장벽을 쌓았지만 그 장벽은 세상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는 장치가 아닌 세상으로부터 자신들을 고립시키는 장치였던 것이다.
섬에서 유일하게 남자의 편을 들어주었던 어부는 우리 시대의 부정과 부패에 대해 낮은 목소리로 외치는 고발자 역할을 한다.
하지만 어부의 목소리에 비해 섬마을 사람들의 목소리는 너무 크다.
어부의 목소리는 섬사람들의 목소리에 묻히고 짓눌린다.
작고 여린 것은 쉽게 짓눌린다.
민초들의 삶은 언제나 짓눌려왔다.
그러나 묻히고 짓눌릴지라도 외치고 외쳐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더러운 세상은 자기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으리라.
-제목 : <섬>
-글˙그림 : 아민 그레더
-출판사 : 보림
-옮긴이 : 김경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