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는 다시 시작됩니다
『백두산 이야기』는 세상이 처음 생겨날 때 지금의 거대한 만주 벌판을 호령하며 살던 우리 민족의 웅대한 역사를 바탕으로 한 백두산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세상이 처음 생겨날 때 달도 둘 해도 둘이었답니다.
조선 사람들은 지금의 만주 벌판에서 나라를 이루며 부지런히 살고 있었습니다.
해와 달이 두 개니 낮에는 곡식이 말라 죽도록 덥고 밤에는 땅이 꽁꽁 얼어붙도록 추웠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흑룡 거인과 백두 거인이 나섰고 흑룡 거인은 실패했지만, 백두 거인은 천근 활의 천근 화살로 해 하나와 달 하나를 쏘아 바닷속으로 떨어뜨립니다. 심술 맞은 흥룡 거인은 자신의 실패에 앙심을 품고 착하고 씩씩한 사람들이 사는 조선 땅에 쳐들어와 닥치는 대로 짓밟고 사람들과 가축을 죽입니다.
결국 흑룡거인과 백두 거인은 100일 간의 기나긴 싸움을 벌입니다.
흑룡 거인이 용이 되어 공격할 때 백두 거인은 흰 호랑이가 되어 싸우고 흑룡 거인이 독수리가 되어 공격할 때 백두 거인은 학이 되어 날카로운 부리로 독수리의 가슴을 궤뚫습니다. 흑룡 거인은 땅으로 떨어져 모래가 되고 넓은 사막이 됩니다.
결국 흥룡 거인은 죽고 백두 거인도 긴 싸움에 지쳐 다시 오리라는 말을 남기고 벌판에 누워 잠이 듭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백두 거인은 거대한 산으로 변해가는데 이 산이 바로 백두산이 됩니다. 이 산을 중심으로 나라는 사방으로 넓어지고 세력이 커져 갑니다.
그리고 조선에는 이런 백두산 노래가 전해 내려 옵니다.
나는 일어나리라 그대가 북을 치고 노래하면
그때 우리는 조선의 먼동을 다시 보리라
나는 깨어나리라 그대가 억눌려 신음하면
그때 우리는 조선의 먼동을 다시 보리라
-김용옥 작사, 최동선 작곡, 백두산 노래
하지만 오랜 세월 평화롭던 나라에 큰 흉년이 듭니다.
땅은 갈라지고 사람들은 굶어 죽고 새와 짐승들도 죽어갑니다.
사람들이 온갖 정성을 다해 기우제를 지내자 백두산이 꿈틀거리며 살아나고 세찬 비가 몇 날 며칠 퍼붓습니다. 이때 백두산 꼭대기는 천지라는 거대한 물웅덩이가 생겨납니다.
사람들은 나라에 재앙이 닥쳤을 때 백두산이 다시 깨어나리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중국, 한국, 두 나라를 대표하는 영웅 신화의 탄생
『백두산 이야기』 곳곳에는 여러 가지 상징과 비유가 들어 있습니다.
흑룡 거인은 중국을 백두 거인은 한국을 대표하는 수호신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흑룡 거인과 백두 거인의 백일 간의 싸움은 반만년 이상의 역사를 이어오는 동안 수많은 왜적의 침입을 받았던 역사적 사실을 백일 간의 싸움으로 비유한 것입니다.
용과 흰 호랑이의 싸움과 독수리와 학과의 싸움을 보면 용은 중국을 대표하는 동물이고 독수리는 서양을 대표하는 동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용과 독수리가 호랑이와 학과 싸운다면 지는 싸움이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새 중의 새인 독수리마저도 학이 이긴다는 것은 작고 부드럽고 약해 보이는 조선이 그만큼 강하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려 한 것입니다. 흑룡 거인이 죽어 모래로 변하고 사막이 되었다는 부분은 거대한 사막 같은 땅 중국이라는 것을 우리 어린이들도 쉽게 알아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다시 오리라는 말을 남기고 잠든 백두 거인이 나라에 재앙이 닥쳤을 때 다시 깨어나는 모습이 담긴 부분이 이 책의 백미입니다.
또한 백두 거인은 언제고 또다시 올 거라 믿어집니다.
백두 거인이 진정 바라는 건 무엇일까요? 다시 온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백두 거인이 바라는 것은 우리가 하나 되는 날이 아닐까요?
그날 백두 거인은 벌떡 일어나 북을 치고 노래할 것입니다. 그러면 다시 이 땅에 먼 동이 더 밝게 비칠 것입니다. 이 책은 1988년 초판본이 나왔으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류제수 선생님은 4년이라는 긴 세월을 바쳤습니다. 검정과 빨강과 고동색의 대비가 마구 살아서 움직이고 꿈틀거리며 가슴에 팍 꽃입니다. 우주의 소용돌이치는 모습, 이글거리는 태양의 모습 백두 거인의 활을 든 힘찬 손목, 기나긴 싸움에 지쳐 잠든 백두 거인의 모습이 오랫동안 뇌리 속에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이 곧 신화입니다
국어사전에 신화라는 말을 찾아보면 신이나 영웅을 다룬 이야기 또는 세상이나 나라가 처음 생길 때의 이야기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탄생 신화인 『단군 신화』나 『그리스 로마 신화』 『주몽 이야기』 따위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신화하면 신비스럽고 성스러운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 꺼풀 벗겨보면 신화도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신화는 신이나 영웅을 다룬 이야기지만 그들도 사람이고 옛날 옛적 이야기지만 그때도 사람 사는 세상이었고 먹고 놀고 마시고 싸고 울고 웃고 병들고 싸우고 죽었습니다.
신화 속 영웅의 모습과 지금 우리 사는 모습을 쉽게 노래에 비유하자면 신화 속 영웅의 모습이 장대하고 웅장한 스케일의 오페라라고 친다면 우리 사는 모습은 대중가요나 트로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신화 속 모습과 우리 사는 모습은 분위기가 많이 다릅니다. 신화 속 모습이 진지하고 장엄하다면 우리 사는 모습은 익살스럽고 경쾌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차이를 든다면 신화는 현실감이 좀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신화는 격조 있고 위엄이 넘치지만 사람 사는 냄새가 잘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왠지 그 속에는 들어가 살고 싶지 않습니다.
영웅으로 산다고 할지라도 그 모습이 불편해 보이고 어두워 보이고 힘겨워 보이고 재미없어 보입니다. 단군신화를 보면 곰과 호랑이가 백일 동안 마늘과 쑥만 먹고 살아야 한답니다. 그것도 컴컴한 동굴 속에서 말입니다. 곰과 호랑이는 사는 게 너무나 불편하고 재미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신화가 먼 나라 이웃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지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신화는 지금 이곳 우리 곁에 가까이 있습니다. 그것은 선을 선으로 존재하게 하고 악을 악으로 존재하지 못하게 하려는 우리들의 마음이 그 안에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심신이 착하고 고운 사람들이 웃을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신화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이 신화의 주인공이고 우리의 삶이 곧 신화입니다.
▶그림책 : 백두산 이야기
▶ 출판사 : 통나무
▶ 글 : 류제수
▶ 그림 : 류제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