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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꼭 씹어 꿀꺽 드세요.

by 천년 느티나무 2024. 2. 27.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

하늘에서 음식이 내리는 걸 상상해 본 적 있나요?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요?

모름지기 이 세상은 밥을 먹어야 사는 세상입니다.

기본적인 밥 문제가 해결되어야 세상만사가 제대로 돌아갑니다.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 식당도 필요 없을 거고, 농부나 어부도 일을 하지 않아도 되고 이 세상의 엄마들은 아이들의 밥을 챙기지 않아도 되고 밥벌이를 위한 노동의 고통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고 어떤 음식을 먹을지 고민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 책에는 하늘에서 음식이 내리는 그런 마을이 나옵니다.

이 마을은 날씨처럼 비나 눈처럼 실제로 하늘에서 음식이 내립니다.

마을의 이름은 꼭꼭 씹어 꿀꺽이랍니다. 보통 여느 마을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학교와 정원과 회사와 가게가 있고 개와 고양이도 사람들과 어울려 같이 살아갑니다.

정말 신기하고 희한한 마을입니다.

이 마을의 날씨는 아침 점심 저녁 눈이나 비나 바람 대신 수프 주스 으깬 감자 완두콩 햄버거 달걀 프라이 버터와 잼 우유 따위 여러 가지 음식들이 골고루 내립니다.

사람들은 접시와 포크와 컵만 준비하고 하늘에서 내리는 음식을 원하는 만큼 양껏 먹으면 되었습니다. 또한 필요한 만큼 얼마든지 가져갈 수 있었습니다.

배고플 때를 대비해 냉장고에 보관해 두었다가 나중에 꺼내 먹을 수도 있었습니다.

이런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정말 정말 좋을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쯤에서 참으로 걱정되는 게 한 가지 있습니다.

마을에 이렇게 매일 음식이 떨어진다면 음식 때문에 마을이 얼마나 더러워질까가 제일 걱정이 됩니다. 다행스럽게도 이 마을엔 청소과가 있어서 집이며 도로며 잔디밭에 떨어진 음식을 치우고 남은 음식을 개와 고양이에게 먹이는 일도 하고 바다에 뿌려 물고기와 거북이와 고래에게도 먹였지요 그래도 남은 음식은 땅에 묻어 정원의 걸음으로써 정원을 거름지게 기름지게 했지요 이렇게 꼭꼭 씹어 꿀꺽 마을은 정말 축복받은 마을이었지요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고약하게 변한 날씨 때문에 마을은 순식간에 재앙에 휩싸입니다.

음식 날씨를 어떡할까요?

스파게티로 마을이 마비되고 온종일 치즈만 내리는가 하면 푹 삶아 불어터진 브로콜리만 내리다가 완두콩 수프 안개가 자욱해 음식을 간신히 찾아 먹고 어느 화요일에는 종일 빵덩이 태풍이 휘몰아칩니다. 딱딱한 빵, 말랑말랑한 빵, 흰 빵, 호밀빵, 통밀빵 따위에 온갖 빵들이 그득하고 크기도 너무나 거대해서 청소과 사람들이 꼬박 나흘을 치워야 했습니다.

음식 날씨는 점점 걷잡을 수 없어집니다.

팬케이크 폭풍이 몰아쳐 거대한 팬케이크가 학교를 뒤덮고 결국 학교는 문을 닫고 말았습니다. 어느 날은 샌드위치가 40 센티미터도 넘게 쌓이고 소금 후추 바람에 토마토 회오리바람이 온종일 휘몰아쳐 사람들은 속이 뒤집히도록 재채기를 하고 사방에 씨와 껍질들로 뒤죽박죽이 되고 맙니다. 마침내 청소과도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맙니다.

거대한 미트볼 우박을 맞아 수많은 집이 부서지고 가게는 문을 닫고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못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마을 사람들이 내린 판단은 뭐였을까요? 내가 마을 사람들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사람들은 으레 하늘에서는 비나 눈이 오리라 생각하고 날씨도 바람이 불거나 안개가 끼거나 햇볕이 나거나 구름이 낄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하늘에서 음식이 내리는 일은 그리 신기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신기한 세상에서 살고 있고 실제로 신기한 일은 얼마든지 벌어지고 있으니까요. 본디 하늘과 땅은 마주 보고 있는 하나의 우주이며 맞닿아 있는 하나의 자연입니다. 지금 우리 땅에서는 쉴 새 없이 풍성하고 먹음직스러운 갖가지 음식들이 내리고 있습니다. 단지 하늘에서 내리는 걸 내린다고만 할 수 있나요?

소중한 우리 땅, 우리 음식

땅에서 나오는 음식도 이 우주에서 내리는 소중한 음식입니다.

땅속에서 내리는 허연 몸뚱이, 마늘 감자 고구마 무 인삼 따위의 귀한 알집들.

땅 위의 줄기와 가지에서 내리는 가지가지 복덩어리, 사과 배 가지 오이 토마토 매실 자두 포도 따위의 달콤한 점액질들. 언제나 하늘과 이마를 마주 대고 있는 키 큰 땅 위의 어머니 소나무 전나무 참나무 미루나무 은행나무 따위의 따뜻한 손들.

이 책은 부부끼리 쓴 책입니다.

아내 주디 바레트가 쓴 글에 남편 론 바레트가 섬세한 팬의 터치감을 살려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림이 화려하진 않지만 하늘에서 내리는 음식의 모습이 역동적이고 여러 등장 인물들의 표정과 몸짓 때문에 저절로 웃음이 터집니다.

평화롭게 살던 이 마을에서는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요?

날마다 때마다 내리는 음식의 포만감에 빠진 마을 사람들은 넘치는 음식으로 인해 하천과 땅이 썩어가는 것도 모른 채 일상의 행복에 젖어 안일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갔을 것입니다.

땅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니 하늘이 제대로 돌아갈 리 없습니다.

그래서 음식 날씨도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꼭꼭 씹어 꿀꺽 마을의 재앙은 바로 우리 지구의 일입니다.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 놓인 마을 사람들은 어떤 결론을 내렸을까요?

결국 마을 사람들은 음식 날씨에 재앙을 견디지 못하고 마을을 떠나 다른 땅을 찾아 나섭니다. 자신들의 삶과 꿈을 펼쳤던 고향을 떠나게 된 마을 사람들의 심정이 어떠 했을까요? 자연의 어머니께서 내려주는 이 풍요로운 자식들을 지켜내지 못한다면,

우리도 꼭꼭 씹어 꿀꺽 마을 사람들처럼 우리의 고향을 떠나야 할지도 모릅니다.

우리 지구 같은 마을이 어디에 또 있을까요? 어디서 슬슬 구수한 밥 냄새가 나는 듯합니다. 자연의 어머니께서 주신 이 살집 좋은 밥을 꼭꼭 씹어 꿀꺽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시기 바랍니다. 절대 버리거나 남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림책 :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

▶ 출판사 : 토토북

▶ 글 : 주디 바레트

▶ 그림 : 론 바레트

▶ 옮긴이: 홍연미